남의 이름으로 명의 (名醫) 행세
돌팔이였던 한국 전쟁의 名 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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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는 불행하게도, 카유가 호의 장교 중에서는 동양에서의 캐나다해군 공보 업무를 담당하는 장교가 있었다. 그리고 데마라의 의료활동은 놓칠 수 없는 좋은 홍보 자료였다. 이 장교는 젊은 군의관의 영웅적 업적을 소개하는 신문 및 라디오 보도문을 작성했다.
그것은 틀림 없는 데마라의 공적이었으나, 미국과 캐나다의 신문이 이를 보도한 지 1주일이 못 되어 데마라는 함장실로 호출당했다. 상관인 풀로머 중령은 난처한 말투로, 본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문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조셉 C. 시르(군의관, 중위, 군번 0-17669)는 타인 명의 도용범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음. 즉시 현장에서 해임할 것. 반복. 즉시 해임할 것. 진상을 조사한 뒤 해군참모총장 앞으로 보고하라.』
데마라의 업적에 관한 기사가 캐나다의 뉴브런즈윅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게재되었고, 진짜 의사 시르가 이것을 읽었다. 그는 신문에 보도된 해군의 명名 군의관은 자신이 아니고, 자기가 전에 세실 B.헤이만 박사이며 존경했던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켄터키 州에 살고 있던 진짜 헤이만 박사가 자신은 의사 시르라는 사람을 모르며, 데마라는 컨닝을 하다 세인트 루이스 대학교에서 쫓겨난 인물이라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밝혀진 진상
데마라는 곧바로 캐나다로 송환되어 해군 사문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는 모든 보수의 지급 정지 처분과 함께 파면되었고 국외로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쯤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사기 행각을 부끄러워하며 그만둘 법도 한데, 데마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추방당한 후, 그는 곧 자기 경험담을 잡지사에 팔아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아다녔는데, 텍사스주의 휴스턴에 왔을 때 그는 때마침 게재된 교도소 직원 모집 광고를 읽게 되었다. 그는 벤 W.존스라는 이름으로 교도관 직에 응모했고, 그가 전에 사용했던 수많은 별명과 도용 명의들을 신원 보증인으로 댔다. 그리고 교도관이 되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 교도관 직을 잘 적응했을 뿐만 아니라 비상한 재주를 발휘했다. 수감자를 위한 쓰기 공부반과 체육의 날이 그의 구상에 따라 시작되기도 했다.
그의 탁월한 직무수행 솜씨는 텍사스주 교도행정국장 O.B.앨리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엘리스는 그에게 흉악범들을 수용한 헌츠빌 교도소에서 진보적인 개혁안을 실시해 보라고 맡겼다. 데마라는 수감자들에게 사회 복지 교육을 실시했고 영화 상영도 주선했으며, 도움이 되는 일과를 짜는 등 새로운 임무를 성심성의껏 수행했다. 교화를 담당하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수감자들에게도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진실은 밝혀지는 법, 성공의 절정에서 데마라에게 또 파국이 찾아왔다. 하루는 잡지를 읽고 있던 한 수감자가 그들의 교도관인 벤 W.존스가 조셉 C. 시르, 세실 B.헤이만 그 외에도 수많은 명의를 가진 페르니난도 왈도 데마라임을 알아낸 것이다. 수감자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교도소 직원에게 말했고, 곧 모두가 데마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엘리스는 교도소 간부회의를 소집, 데마라를 사문회에 회부했다. 잡지를 보여주자 데마라는 그 내용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는 선량하게 일한 자신의 말보다 수감자의 말을 더 믿느냐고 윽박지르며, 자신을 뭐 보듯 쳐다보는 간부들을 나무라며 자신을 불신하는 사람과는 목숨을 건 결투라도 하겠다고 대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허세였다. 사문회에 회부된 다음 날, 그는 짐을 꾸려 교도소를 떠났다.
재미있는 것은 데마라를 고용했던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은 데마라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명의도용에 관해서는 범죄가 틀림없으므로 어쩔 수 없었지만, 그들은 데마라가 제대로 된 자격과 증빙 서류만 갖춰 본인으로서 돌아온다면 그를 언제든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상관 위치에 있었던 엘리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데마라는 교도관으로 일했던 사람 중에서 가장 전도유망한 사람이었다.’라고 엘리스는 말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데마라처럼 의심할 여지 없이 여러 훌륭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어째서 정식으로 자격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은 데마라는 ‘악당 근성이지, 순전히 악당 근성 때문이지.’라며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고 한다,
사기꾼의 최후
하지만 데마라의 최후는 그리 비참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후에 정식으로 임명된 교회 목사가 되었다. 마침내 이 명의도용 범이 자기 이름으로 된 온전한 자신의 신분을 취득한 것이다. 도용 범이 목사라니, 과연 그 목사 아래 신도가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키울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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