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술의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
얼음 궁전을 지어 공작 부부의 첫날밤을 보다
러시아에 군림했던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는 시베리아에 부는 바람만큼 냉혹한 여인이었다. 그러니 이 여제가 얼음으로 탑과 무도회장, 침실 등이 갖춰진 궁전을 지었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때는 1970년, 30년 동안 혹한이 유럽을 덮쳤다. 센강, 라인강, 다뉴브강은 물론 템스강도 수개월씩 얼어붙었다. 활활 타는 난로 앞에서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데도, 포도주가 술잔에 떨어지기도 전에 꽁꽁 얼어붙는 날씨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가지 개축계획을 막 끝낸 건축가 페터 에롭킨에게 어느 날 얼음 궁전의 설계가 의뢰되었다. 수백 명의 노예와 숙련공들이 이 공사에 투입되었다.
궁전은 길이 25m, 높이 10m, 길이 7m인 고전 양식으로 되어있었다. 얼음 중에서도 투명도가 높은 얼음만을 골라서, 정해진 위치에 쌓기 전에 자와 컴퍼스로 정확한 치수를 쟀다. 얼음끼리 붙이려면 물을 뿌려 금방 얼어붙게 하면 되었다. 따라서 건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얼음덩어리였다.
얼음으로 만들어져 더욱 황량해 보이는 궁전에는 얼음 나무도 조각하여 심었는데 어떤 것은 궁전 높이만 하였고, 어떤 것은 갓 심은 묘목과 같은 높이였다. 거기다 얼음 열매를 단 작은 오렌지 나무들도 심었다. 나뭇가지에 앉은 얼음 새는 천연색으로 채색되었다. 빙벽 틈과 틈 사이엔 얼음조각품을 세공하여 공간이 가득 차 보이게 했고, 유리창은 투명한 얇은 빙판이었다.
침실엔 커튼이 달린 정교한 4주 식 柱式 침대가 있었다. 매트리스와 이불, 2개의 베개와 2개의 나이트캡이 딸려 있었는데 이 모두가 얼음으로 만든 것이었다. 벽의 한쪽에 붙어있던 벽시계까지 얼음으로 된 것이었으며, 그 밖의 모든 일상 침실 도구가 모두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앞마당에 나서면 놀랄 만한 구경거리까지 있었다. 그것은 페르시아 민속 의상을 한 얼음 사람이 실물 크기의 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조각된 코끼리의 코는 낮과 밤마다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는데, 낮에는 7m 높이의 분수가 뿜어나왔고, 밤에는 석유를 써서 화염을 뿜게 했다. 나팔수가 코끼리 뱃속에 들어가 코끼리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왜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만든 줄 모르겠지만, 얼음으로 만든 6문의 대포와 2문의 고사포도 있었다. 얼음 대포가 견딜만한 화약의 양을 세세하게 계산했기 때문에 대포도 구경꾼도 다치지 않고도 여러 차례의 발사를 성공시켰다. 얼음으로 만들지 않은 유일한 물건은 초대받지 않은 구경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한 나무 울타리뿐이었다. 이 얼음 궁전은 사치나 호와의 산물이라고 칭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은 권력층이 오락거리로 만든 무해(無害)한 놀이 건물이라고 이해되었다. 하지만, 사실 이 얼음 궁전을 만들라고 명령한 안나 이바노브나에게는 잔인한 의도가 있었다.
미하엘 알렉시에비치 골릭친 공작은 여제의 허가도 없이 가톨릭교도인 이탈리아 연인과 혼인해서 여제를 화나게 했었다. 그 분노를 샀기 때문일까? 혼인 후 얼마 안 가서 신부가 죽었다. 측은지심을 가질법도 한데,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았던 안나 여제는 노여움의 표시로 골릭친 공작을 궁중의 어릿광대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여제는 공작에게 재혼할 것을 명했다. 이번에는 신부를 손수 골랐다. 신붓감은 몽고 계통인 칼무크족 출신의 하녀로 지독히도 못생긴 여자였다. 얼음 궁전은 그들이 첫날밤을 보내야 할 곳이었다. 이 불행한 한 쌍의 부부는 코끼리 등에 올려놓은 쇠창살에 갇혀 신혼 퍼레이드를 했고, 그 뒤에는 안나가 얼음 궁전에 모아 둔 괴상한 인간들과 곰이나 돼지 같은 짐승 떼가 뒤따랐다. 여제의 분노는 한 쌍의 신혼부부를 놀림거리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얼음으로 만든 침실은 추울 뿐 아니라,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하든 밖에서 보일 만큼 투명했다. 공작과 공작부인은 구경꾼들이 밖에서 쳐다보는 가운데 첫날밤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종말은 그렇게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혹독한 한파가 물러나고, 날쎈 시베리아 북풍도 멎고, 이윽고 봄이 오자 얼음 궁전은 녹아 강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 여제가 삶을 마감했다.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는 젊은 시절에 과부가 된 여인이었다. 아마도 평생 느꼈을 옆자리에 대한 쓸쓸함이 그녀의 성정을 매섭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하게도, 미하엘 공작과 칼무크족 출신의 신부는 비록 많은 눈앞에서 첫날밤을 보냈으나 서로 마음이 잘 맞았고 그래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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