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고대가문에 나타난 유령들
죽음의 징조
유럽의 귀족 가문 족보에는 비현실적이고 괴이한 사건이 많이 실려있고, 그 가운데 몇몇 얘기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고만스턴 성의 여우들’같은, 기분 나쁜 전설 에피소드 몇 개다.
아일랜드 미스에 자리 잡은 고만스턴 성에서는 영주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성 주위에 여우들이 몰려든다는 전설이 있다. 그 지방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그 전설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 2월, 제12대 자작이 죽던 날. 그 지방 사냥꾼들은 종일 숲속을 헤맸지만, 여우 한 마리도 못 보고 돌아왔다. 노련한 사냥꾼들이 여우 그림자 하나 발견하지 못한 걸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한 나무꾼이 그들에게 일러 주었다. ‘영주님이 죽는 걸 보려고 모두 몰려간 거야,’
1876년 9월 어느 스산한 밤, 성채를 산책하던 영주 부인은 성문 주위에서 한 무리의 여우들이 배회하는 걸 보았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영주 부인은 한참 여우들을 바라보다가 하녀들의 재촉에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밤, 부인의 남편인 고만스턴 가문의 제13대 자작이 죽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의 시체가 장지까지 운구될 때 여우 떼가 그 뒤를 따라왔다는 기록이 있다.
1907년 제14대 자작이 죽었을 때도 여우 떼들이 나타났다. 그의 시체가 안치된 교회당 밖에는 밤새 여우 떼들이 어슬렁거린 것이다. 고민스터 가문과 여우의 악연은 그때쯤 유명한 것이라, 사람들은 그 여우들을 쫓아 버리려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월트셔에 위치한 와더 성주 아룬델 가문에서도 가문 고유의 죽음을 알리는 사자使者가 있었다. 아룬델 가문의 일원 중 하나는 죽기 직전에 와더성의 성벽 위에 유령 같은 올빼미가 앉아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는 것이다. 제법 유명한 전설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진실인지 알고 싶어 했으나 올빼미의 모습을 한 유령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최후의 후계자인 아룬델 경이 1944년에 사망함으로써 가문의 후사가 끊겼기 때문이다.
떠도는 나뭇가지
1586년 영국의 골동품 수집가 윌리엄 캠던은 오래되고 불길한 이야기에 정통했다. 그는 체셔지방 브레레튼 가문에 어떤 불길한 징조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브레레튼의 상속자가 죽기 직전이면, 그 며칠 전부터 그들의 장원 옆에 있는 호수에는 언제나 나뭇가지가 떠도는 모습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 같은 징조는 장원의 주인인 성주가 죽을 때는 나타나지 않고, 꼭 그 상속자가 죽을 때만 목격된다.’ 이 같은 괴이한 징조는 브레레튼 가문 내에선 당연히 유명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오래전에 죽은 자의 망령 때문으로 추측했다.
프로이센의 저명한 호헨졸레른 일가에도 백녀가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흰머리와 하얀 옷을 입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던 유령을 백녀라고 일컬었는데, 사람들은 그 백녀의 정체를 오를라문데의 아그네스 백작 부인이며, 그녀가 아이를 살해한 죄로 방안에 갇혀 죽은 원한이 서려 백녀가 되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또 어떤 일설에 따르면 백녀는 베르타 폰 로텐부르크 공녀라고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령을 붙잡고 물어볼 수 없으니, 그의 정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백녀가 출현했다면 호헨졸레른 가문에서는 반드시 누군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위대한 유럽국가를 꿈꾸었던 프로이센의 프레데릭 빌헬름 4세는 1861년 백녀의 출현에 놀라 미쳐버렸다고 한다.
목 없는 운구인들
어느 날, 성문을 지키던 파수병이 백녀가 4인의 목 없는 운구 인들을 이끌고 오는 걸 보았다. 그들은 파수병들을 스쳐 소리 없이 성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왕가의 옷을 입은 시체를 운구차에 떠메고 나왔다. 그 시체 역시 목이 없었으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는 왕관이 놓여 있었다.
그 환상 탓이었을지, 빌헬름 왕은 병세가 호전되지 못하고 이듬해 초에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그의 부친인 프레데릭 빌헬름 3세가 죽을 때도 백녀가 출현하여 죽음을 예고했었다. 그들의 선조인 바이로이트의 마르그라프도 1678년 낙마하여 임종을 맞기 직전에 백녀를 목격했다 한다.
바바리아의 왕가 역시 헤세 공작 가문과 똑같은 죽음의 징조를 갖고 있었다. 그 징조는 다름슈타트의 흑녀로, 공작 부인의 유령일 것으로 모두 믿고 있었다. 첫 목격은 1850년이었는데, 아르샤펜부르크에서 다름슈타트 성의 헤세 대공이 부모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흑녀가 나타났다. 며칠 후 그의 모친은 콜레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1854년에는 작센의 왕비가 징조를 목격했는데, 엘베 강변 옆 필 니치 성에서 그녀는 검은 상복을 입고 의자 옆에서 서성대는 흑녀를 보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왕비의 시종들은 얼굴이 새파래지며, 모시던 왕비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추측은 어긋났다. 왕비는 멀쩡히 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에게 전해진 것은 드레스덴에 있는 작센의 왕이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귀신 붙은 보르지아 가문
현대에 와서 다시 한번 조사할 필요가 있겠지만, 보르지아 가문은 피에 굶주렸다거나 귀신 붙은 가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여러 사건이 소름 끼치지만, ‘무자비한 로드리고 보르지아’란 별명의 교황 알렉산더 6세에게 일어난 사건은 그중 가장 유명하다. 1503년의 어느 날 밤, 교황의 거실을 방문한 추기경은 어떤 환상을 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성스러운 환상은 아니었고, 교황이 유령의 관에 누워 있고 그 주위에 푸른 귀신불이 찬란히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추기경이 성호를 긋자, 그 환영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날 밤, 자정이 되기 전에 교황은 돌연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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