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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 - 히틀러에게 공산당을 쳐부술 구실이 된 사건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히틀러에게 공산당을 쳐부술 구실이 된 사건  1934년 1월 10일, 24세의 네덜란드 사람인 마리누스 판 테르 루베가 방화죄로 처형당했다. 그럴 만했다. 그의 죄목은 독일 베를린의 으리으리한 국회의사당 라이히슈타크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었다는 거니까.  하지만 이런 처형은 여러 가지 의문점이 남았다. 나치스를 증오한, 공산주의자였던 판 데르 루베가 정말로 방화를 저질렀을까? 아니면 그는 마침 좋은 빌미를 잡은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스 지지자들의 무고한 제물이었을까?  이 화재는 독일 역사의 방향을 바꿔 놓은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히틀러가 독일에서 독재적인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화 사건을 처음 목격한 사람은 한스 플로터라는 신학도였다. 그는 1933년 2..

300년전의 트렌스젠더? - 여장을 즐기던 총독

300년전의 트렌스젠더? 여장을 즐기던 총독     1702년 뉴욕 의회의 개회를 선언한 귀족은 과연 왕족다운 기품이 있던 남자였다. 영국의 앤 여왕을 대신하여 뉴욕 의회의 개회에 참석한 그는, 호화스러운 여성 가운과 우아한 머리 장식, 그리고 섬세히 세공이 되어있는 부채는 의회 참석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최고의 여성 패션으로 단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식민지 아메리카의 총독 콘베리 경이었기 때문이다.  의회에 참석한 모든 관리가 여왕의 대리인이 영국에서 온 모두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콘베리는 의연하게도 대답했다.  ‘여러분은 사물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는 바보들입니다. 오늘 의회에 나는 한 여성을 대리하고 있소. 따라서 나는 되도록 충실히 그분을..

유럽 고대가문에 나타난 유령들 - 죽음의 징조

유럽 고대가문에 나타난 유령들죽음의 징조  유럽의 귀족 가문 족보에는 비현실적이고 괴이한 사건이 많이 실려있고, 그 가운데 몇몇 얘기는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고만스턴 성의 여우들’같은, 기분 나쁜 전설 에피소드 몇 개다. 아일랜드 미스에 자리 잡은 고만스턴 성에서는 영주의 임종이 가까워지면 성 주위에 여우들이 몰려든다는 전설이 있다. 그 지방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그 전설의 기원은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1860년 2월, 제12대 자작이 죽던 날. 그 지방 사냥꾼들은 종일 숲속을 헤맸지만, 여우 한 마리도 못 보고 돌아왔다. 노련한 사냥꾼들이 여우 그림자 하나 발견하지 못한 걸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한 나무꾼이 그들에게 일러 주었다. ‘영주님이 죽는 ..

그레이엄 박사의 기발한 치료 - 불임 치료의 침대에서 하룻밤

그레이엄 박사의 기발한 치료불임 치료 침대에서 하룻밤    1781년, 아이를 낳지 못해서 골머리를 앓는 런던의 부부들에게 불임을 치유해 준다는 안내문이 배달되었다. ‘천국의 침대’라는 침대에서 부부가 하룻밤을 보내면 효험이 있다는 것인데 비용은 최고 500파운드까지 지급해야 했다. 임신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이러한 경이로운 일을 행할 수 있었던 자는 제임스 그레이엄 박사였는데, 에든버러 출신 의사인 그는 전기과 자력(磁力)을 이용한 치료법을 창안하여 세상에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그의 괴이한 치료법은 단숨에 유행의 도시 런던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으며, 그런 주목에 힘입어 그는 시내 아델피지 區의 로얄 테라스에 「건강의 신전」을 개설했다. 그곳에서 그레이엄 박사는 흑인 종복의 시중을 받는 특..

미식가 or 괴이한 입맛 - 왕의 심장까지 먹은 사나이

미식가인가 식량개량자인가 왕의 심장까지 먹은 사나이   유명한 식도락가 프랭크 버클랜드는 뭐든지 가리지 않고 먹었다. 아무리 먹성 좋은 사람이라도 조반은 가볍게 먹는 편인데, 그는 아침으로 갓 자른 악어고기와 오렌지주스를 먹곤 했다.  19세기 영국의 외과 의사이자 박물학자이기도 했던 버클랜드는 ‘영국 동물 이식(異食)협회’의 창립 회원이기도 했다. ‘영국 동물 이식협회’는 영국의 들판에 캥거루로부터 들소에 이르는 각종 야생동물을 사육시켜 국민의 식량자원을 증가시키자는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이다. 여러 가지 야생동물을 먹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는 만큼, 프랭크 버클랜드가 특이한 식성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1862년 버클랜드는 협회의 정기만찬회 간사가 되었다. 만찬회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

심술의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 - 얼음 궁전을 지어 공작 부부의 첫날밤을 보다

심술의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얼음 궁전을 지어 공작 부부의 첫날밤을 보다   러시아에 군림했던 여제 안나 이바노브나는 시베리아에 부는 바람만큼 냉혹한 여인이었다. 그러니 이 여제가 얼음으로 탑과 무도회장, 침실 등이 갖춰진 궁전을 지었다고 해서 그리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때는 1970년, 30년 동안 혹한이 유럽을 덮쳤다. 센강, 라인강, 다뉴브강은 물론 템스강도 수개월씩 얼어붙었다. 활활 타는 난로 앞에서 포도주를 따르고 있는데도, 포도주가 술잔에 떨어지기도 전에 꽁꽁 얼어붙는 날씨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가지 개축계획을 막 끝낸 건축가 페터 에롭킨에게 어느 날 얼음 궁전의 설계가 의뢰되었다. 수백 명의 노예와 숙련공들이 이 공사에 투입되었다.  궁전은 길이 25m, 높이 10m, 길이 7m인 고..

교회를 분열시킨 서류 - 가짜로 밝혀진 콘스탄티누스 기증

교회를 분열시킨 서류가짜로 밝혀진 콘스탄티누스 기증증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 교황들은 600년 동안 그들이 기독교 세계의 지배자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로서 「콘스탄티누스 기증 증서」를 내세웠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콘스탄티누스 1세)는 기독교로 개종한 첫 로마 황제였다. 서기 31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그 후 그의 지병인 문둥병이 기적적으로 치유함에 따라 감사의 표시로서 로마 제국의 절반을 교회에 헌납했다고 한다. 그 기증의 뜻을 담은 문서가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콘스탄티누스 기증 증서’ 이다. 그 문서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당시 제국이었던 로마의 수도를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하고 동시에, 로마 도시와 서로마 제국을 당시 교황과 교황의 후계자에게 넘기며, 자신은 동방 ..

대단했던 명의도용 범죄자 - 페르디난드 왈도 데마라 (2)

남의 이름으로 명의 (名醫) 행세 돌팔이였던 한국 전쟁의 名 군의관 2 그에게는 불행하게도, 카유가 호의 장교 중에서는 동양에서의 캐나다해군 공보 업무를 담당하는 장교가 있었다. 그리고 데마라의 의료활동은 놓칠 수 없는 좋은 홍보 자료였다. 이 장교는 젊은 군의관의 영웅적 업적을 소개하는 신문 및 라디오 보도문을 작성했다.  그것은 틀림 없는 데마라의 공적이었으나, 미국과 캐나다의 신문이 이를 보도한 지 1주일이 못 되어 데마라는 함장실로 호출당했다. 상관인 풀로머 중령은 난처한 말투로, 본국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전문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조셉 C. 시르(군의관, 중위, 군번 0-17669)는 타인 명의 도용범이라는 정보를 입수했음. 즉시 현장에서 해임할 것. 반복. 즉시 해임할 것. 진상을 조사한 ..

대단했던 명의도용 범죄자 - 페르디난드 왈도 데마라 (1)

남의 이름으로 명의 (名醫) 행세 돌팔이였던 한국 전쟁의 名 군의관  1 이 세상 어떤 사람이든 누구나 목에 힘을 주며, 주위의 추앙과 존경을 받고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페르디난드 왈도 데마라의 경우, 그 욕심이 지나쳤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일인자가 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타인 명의도용 범, 그중 한 사람인 데마라는 신학자, 심리학자, 철학박사, 교도관, 교사 그리고 의사로서 감쪽같이 행세했다.  미군 육군과 해군을 차례로 탈주한 그는 1941년에 로버트 린턴 프렌치라는 이름으로 철학박사라 자칭하면서 켄터키 州의 한 트라피스트 수도회 소속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욕심에 넌더리가 난 나머지, 내면의 평화를 찾기 위해 수도원을 찾아왔노라고 자신을 소개..

몽스의 천사들

몽스의 천사들    제1차 세계대전 중 치열한 몽스 전투가 있던지 1개월 후, 런던의 紙에 게재된 기사가 사회에 작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후 오늘까지 소소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웨일스 태생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아서 매챈이 쓴 기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내용은, 3배나 많은 병력을 가진 적군을 맞은 영국 원정군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영국 원정군과 독일군 사지에 몽스의 천사 또는 천사들(천사가 하나였다는 설과 한 떼의 천사들이 왔었다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음) 이 홀연히 나타나자, 적군은 모두 혼란에 빠져 도망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몽스전투는 1914년 8월 26일에 있었다. 이 기사가 신문에 실린 9월에는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 대부분이 아직..